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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グヮンヒ博士の安保戦略研究所」で、洪博士が翻訳したものです。博士の前書きもあります。 http://khhong.com/article/view.php?id=khinc_free&no=871
| 수수께끼의 조직 조총련 "과협"의 반역적 죄과 | | 일본은 뒤늦게나마 조총련을 일본의 안전보장상 심각한 유해세력으로 인식, 대처하기 시작했다. 김정일 정권에 대한 제재차원에서 조총련에 대한 실제적이고 강도 높은 압박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달에도 조총련계 회사가 불법수출혐의로 일본당국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총무대신이 전국 지방자치체에 대해, 조총련 시설에 대한 세금을 법에 정한대로 징수하도록 지시했다(상께이신문 3.2 보도). 일본정부는 드디어 조총련 여맹("재일본조선민주여성동맹") 위원장 김소자(金昭子)가 평양 방문을 위해 2.27 신청했던 재입국 허가를 보류했다. 김소자는 소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다. 조총련에 대한 제재는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나, 특히 조직 활동력을 제압하기 위한 재정적 압박과 함께, 김정일의 선군정치, 강성대국을 지원해온 스파이조직 "과협"이 PSI 차원에서 표적이 되고 있다.
월간 정론(正論) 2006.4월호에 조총련 산하 과협("재일조선인과학기술협회")의 정체를 밝힌 기사가 게재되었다. 필자 블라디미르(Vladimir, 필명)는, 본래는 사이버테러 전문가로 알려지며, 일본어, 영어, 중국어, 한국어에 능하고, 이슬람 테러문제도 추적하나, 근년에는 주로 북한문제에 전념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는 이처럼 생생한 추적기사를 기대할 수없어 관계자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전문을 번역했다. "북조선"(북한)등 용어표기는 편의상 가급적 원문대로 표기했다.(* 연설, 혹은 기사의 조선말 원문을 확보하지 못한 부분은 일어로 번역된 것을 다시 한글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표현과 뉘앙스가 다소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을 수있다)
<<미사일 데이터 유출, 대포동 발사, 수수께끼의 조직 "科協"의 정체를 밝힌다>>
조총련(재일조선인총연합회) 산하인 "과협"(재일본조선인과학기술협회)이 또다시 지면을 장식했다. 1.24 보도에 육상자위대의 최신형 지대공미사일 시스템에 관한 연구개발단계의 데이터 등이 기재된 자료가 과협 손에 건네졌다고 한다. 경시청 공안부는 작년 10월 무허가로 의약품을 판매했다는 약사법 위반혐의로 관련 시설인 과협을 가택수색했었다. 그 과정에서 발견된 자료로부터 이러한 사실이 부상했다. 19995.4 육상자위대는 "03식(式) 중거리지대공유도탄시스템(中SAM)" 에 관한 연구개발데이터 가운데 전술탄도탄(TBM)에 대한 대처능력을 포함한 성능검토에 사용하는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및 자료 작성을 미쯔비시총합연구소(三菱總合硏究所)에 발주했었다. 이때 미쯔비시總硏으로부터 재하청을 받았던 기업이 바로 앞서 약사법위반혐의로 체포된 科協系 인물이 임원인 IT기업이었다. 이 사건에 관해서 조총련신문 조선신보(朝鮮新報)는 이렇게 반론했다. <중략> "미사일 데이터"는 재일조선인이 경영하는 민간회사가 업무위탁을 받은 가운데 제공된 자료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이 자료가 과협으로 건네졌던 사실은 없다. 더우기 "조총련 산하단체인 과협의 간부였던 남성이 사장으로 근무했던 회사" 등으로 이 회사를 "조총련계 기업"이라고 단정적으로 기술하고 있는데, 이 회사는 과협과는 관계없고 "조총련계 기업"도 아니다. 사실관계가 있다고 한다면 이 회사의 전 사장이 과협의 비전종(非專從=비전임)임원을 했었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이유만으로 "조총련계 기업"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견강부회라고 할 수 있다(2006.1.31자). 이것은 강변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그 "민간회사" 임원 6명중 3명이 과협 임원(고문2명, 부회장 1명)임은 물론, 작년 10월 사명(社名) 변경후에 취임한 현재의 대표이사를 포함한 3명이 쿄또대학(京都大學) 공학부 출신이다. 누가 보아도 조총련계, 광협계임은 말할 필요가 없고, "과협 쿄또대학공학부계 기업"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인 임원구성이다. 또한 동시에 조총련계 IT기업 가운데, 초기부터 활동해온 것은 청상회(靑商會=재일본조선청년상공회) 등 상업단체가 아니라, 쿄또대학 출신인 과협인사들이었던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추측할 수 있다. 작년 10월부터 보도를 통해 접했을 "과협"에 관해 아래에 다소 언급해보려고 한다.
대포동은 "재일조선인과학기술자의 활동 성과"
1999.3에 있었던 일이다. 북조선의 수도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이틀간에 걸쳐 개최되었던 "전국과학자-기술자대회"의 첫날, 7년만에 개최된 이 대회에는 북조선의 과학자와 기술자, 내각과 성(省), 중앙기관 간부들 얼굴들 속에, 일본에서 참가한 조총련 과학자대표단의 모습도 보였다. 단장은 당시의 과협 회장이던 신재균(申在均)이다. 개막식에서는 먼저 홍성남 총리가 당중앙위원회의 축하문을 읽고, 북조선에서의 과학자, 기술자의 금후의 과제에 대하여 말했다. 이어서 최태복 당비서가 단상에 올라 주로 전년도에 북조선이 달성한 과학기술상의 "빛나는 성과"에 대한 보고문을 낭랑하게 읽었다. 이때의 모양을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이렇게 쓰고 있다. <대회에서는 과학기술의 발전에서 전환(전환)을 일으키고,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을 힘차게 추진할데 대하여 당중앙정치국원후보인 최태복 비서가 보고, 지금까지의 성과에 대하여 말했다.(1999.4.2자) "지금까지의 성과에 대하여 말했다".... 조선신보는 명확하게 의도적으로 이부분을 간략히 처리했다. 그렇게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단상의 최대복 비서는 실제로는 이렇게 언급했던 것이다. "100%의 우리 힘, 우리의 기술로 처음으로 인공위성<광명성1호>을 성공리에 발사한 것은, 최신과학기술발전에서 달성한 가장 자랑스럽고 귀중한 성과이다. 재일 조선인과학자, 기술자들은 사회주의조국의 부강발전과 조국통일을 위해 애국적인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여, 주체조선의 공민(公民)이라는 영예를 가슴 깊이 간직하고 조국의 과학자, 기술자들과 경제건설에 크게 기여했다..." 일본사회를 뒤흔들었던 북조선미사일 "대포동". 북조선측이 '광명성1호'라고 부르는 바로 악몽과 같은 미사일 발사를 결실시켰던 것은 북조선 독자의 기술이 아니라, 재일조선인 과학자, 기술자의 바로 "애국적인 활동"에 성공의 열쇄가 있었다라고 최태복 비서는 보고하고, 힘차게 축복했던 것이다. "재일과학자, 기술자의 애국적 활동", 추상적인, 알듯 모를듯한 말이다. 미사일에 관련되는 기술문헌을 조국을 위해 준비하고, 착실하게 보내는 그러한 활동을 일컫는 것일까? 혹은 그 일에 자금적 지원 등도 포함되고 있는 것일까? 흥미 깊은 사실이 있다. 재일과학자의 세계에는 북조선에서 "로케트 엔진"을 의미하는 내연기관의 국제적 권위가 2명 있다. 왜 "국제적 권위가 2명"인가 하면, 열살 정도 나이 차이가 나는 두 사람은, 연명으로 미국 동력기계학회상(動力機械學會賞)을 수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명 모두 과거 동경대학 생산기술연구소(東大生産硏)에 소속했고, 한명은 현재 과협의 고문이며, 북조선의 금강원동기합영회사(金剛原動機合營會社) 사장. 또다른 한명은 科協 임원에는 이름이 올라 있지 않지만, 同社로부터 의뢰받은 물자를 北으로 보내면서 동사 제품을 프랑스 등으로 판매하는, 말하자면 중개업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고 한다. 나이는 열살 정도 차이가 나지만, 이 두명은 내연기관(內燃機關)이라는 전문분야도, 관계하고 있는 북조선기업도 같다. 게다가 놀랄만한 것은 대포동 발사 전후, 흡사 "발사전(前) 준비"에서 "발사후(後) 처리"까지를 친절 자상, 정중하게 지도하는 것처럼 두 사람모두 매우 빈번히 북조선을 방문했고, 때로는 함께 귀국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애국적 활동"의 구체적인 내용의 하나이다. 침착하게 "과협"을 곰곰이 해독하면 놀랄만한 사실이 속속 부상한다. 거기는 북조선의 "선군정치", "강성대국"을 지탱하는 온갖 것들이 용해되어 있다. 더 나아가 말하면, 과협의 존재의의란 일본과 북조선이라는 두 점(点)간의 문제뿐만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과협.... 그들은 어떤 존재인가?
12개 지부와 8개의 전문위원회
"재일조선인과학기술협회(과협, KAST)는 재일코리안 과학자, 기술자, 생산기업가들을 비롯하여 자연과학에 종사하는 교직원과 대학원생들을 망라하는 단체입니다." 과협이 자신들의 조직에 대해서 설명하는 말이다. 우선 교과서적인 설명에서부터 시작하자. 본부에 해당하는 "과협중앙(科協中央)"은 토꾜도 붕꾜구 하꾸산(東京都 文京區 白山)에 소재하는 "조선출판회관" 6층에 있다. 지부는 전국에 걸쳐 있다. 동경都 지역만은 "토꾜", "니시토꾜(選京)", "조선대학교지부"의 3개 지부가 있으며, 그 외에는 지역에서는 카나가와(神奈川), 혹까이도(北海道), 토호꾸(東北), 토까이(東海), 쿄또(京都), 오사까(大阪), 효고(兵庫), 츄시꼬꾸(中四國), 큐슈(九州)의 9개 지역에 지부를 두고 있다. 이하, 본부 및 이들 지부의 총칭을 과협이라고 부른다. 과협의 역사는 길다. 종전(패전) 다음해인 1946.6 관동에서 "재일조선과학자협회"가 생기고, 1954.5 "재일본조선인자연과학기술협회"로 되었다. 한편, 관서(關西, 칸사이)에서는 1953.7 "재일본조선자연과학자협회"가 출범했다. 이 東西의 과학자조직은 1959.4 합쳐지고 의학부문을 포함한 "재일본조선인자연과학기술자협회"가 된다. 그런데 후속 2개월 사이에 이 조직은 극적인 발전을 이룬다. "재일조선사회과학자협회"와 "재일조선의약학(醫藥學)협회"를 흡수하여, 동년 6.28 과학이라는 이름이 붙은 모든 분야를 포함한 "재일본조선인과학자협회"가 탄생했던 것이다. 이후 이 조직형태는 26년 계속되는데, 이사이에 사협(社協, 재일본조선사회과학자협회), 의협(재일본조선인의학협회)가 독립, 분리되어 1985.7.14 자연과학으로 특화된 집단인 "재일본조선인과학기술협회"로 다시 재편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과협은 운영에서 3년마다 "기(期, term)"을 정한다. 2004년-2006년.... 즉 이 글을 집필중인 현재는 "17期"에 해당한다. 과협은 8개의 "전문위원회"를 두고 있다. 수학전문위원회, 물리학전문위원회, 화학재료전문위원회, 생물농학전문위원회, 기계자동화전문위원회, 컴퓨터전문위원회, 토목건축전문위원회, 전기전자전문위원회이다. 각 전문위원회에는 각각 분과회(分科會)라고 할 수 있는 "연구회"가 있다. 예를들면 화학재료전문위원회에는 "정밀유기화학연구회", "초전도연구회", "수소에너지연구회", "환경문제연구회", "에너지연구회"가 있고, 물리학전문위원회에는 "레이저연구회"가, 생물농학전문위원회에는 "식물생리연구회", "미생물연구회", "세포 및 유전자공학연구회", "자연보호연구회"가... 라는 식이다. 임원은 회장 1명, 상임이사 4명, 부회장 10명, 고문 10명, 기타 연구부장, 기술부장, 홍보기획부장, 총무부 부부장, 사무부장, 그리고 8개 전문위원회에 위원장이 각 1명, 그위에 재정감사 4명이 있다. 회장은 조선대학교 이학부 졸업인 황철홍(黃喆洪) 씨인 것은 뉴스 등에서 보도되고 있지만, 그밖의 임원이나 멤버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는 것이 실정일 것이다. 우선은 과협 임원의 면면을 간략히 살펴보자. 지금까지 보도 등을 통해 공개된 인물 이외는 이름을 밝히지 않겠다. 일별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자연과학 중에 물리와 공학분야 전문가가 매우 많다는 점이다. 농학박사나 식물생리학을 전문으로 하는 학자가 겨우 들어있을 정도로, 본래 "이학(理學)"에 포함될터인 지학(地學)이나 천문학 등을 전공하는 학자는 적어도 임원에는 한명도 없다. 임원 구성부터 과협은 "편중된" 과학자 집단인 것이다. 먼저 "상임이사" 4명. 그중 1명은 특필해야 할 인물이므로 약간 언급해두고자 한다. 과협 15기 이전의 회장직을 오래 담당했던 이시구(李時求) 씨이다. 쿄또대학(京都大學)에서 오사까대학 대학원으로 진학했던 이시구씨는 물리학 박사학위와 북조선과학원 원사(院士) 칭호를 가지고 있다. 이시구씨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보도된 가운데 쇼킹했던 것이 이금부터 16년전 문예춘추사의 월간지 쇼꿍!(諸君!) 1990.5월호에 게재되었던 "일본이 떠받치는 북조선의 원발계획(原發計劃)"이다. 현재 작가로 활약하고 있는 아소 이꾸(麻生 幾, 麻生 惚一郞)씨가 젊은 날 썼던, 시대를 어느정도 앞선 충격의 리포트였다. 글 중에 이러한 일절이 있다. "예를들면 과협 회장인 李時求 씨는 일본의 원자물리학 권위자 아래서 배웠으며, 원자력 개발에도 정통하고 있다." 그리고 이시구씨가 배웠다는 "일본의 원자물리학의 권위"에 대해서 아소(麻生)씨는, 북조선이 타게트로 하는 일본인 과학자 항목에서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86년에는 우주공학의 권위이며 동경대학 명예교수인 이또까와 히데오(絲川 英夫)씨를, 또한 87년에는 원자물리학의 권위이며 일본학술회의 회장(당시)인 후시미 코지(伏見 康治) 한다이(阪大) 명예교수, 전 일본원자력연구소 이사장이며 과학기술청 고문인 무나까따 에이지(宗像 英二) 등을 과협 회장의 중개로 북조선이 초빙하고 있다". 이 "과협 회장"이 李時求씨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후시미씨로 말하면 전 참원의원(參院議員)인 이론물리학자로서, 1909년 출생이니 96세다. 근래엔 "아시아-태평양의 평화,군축,공생국제회의"(PDSAP)와 반핵운동등 소위 좌파시민운동에서 눈에 띄는 이름인데, 구 소련과학아카데미와 일본원자력학회에도 소속되어 있다. 과학기술사에 밝은 인물은 말한다. "전쟁중 일본이 행했던 원폭연구에는, 대표적인 것으로 육군계통의 니시나연구소(仁科硏究所, 소장: 니시나 요시오)와 해군(海軍)계인 물리간담회(物理懇談會) 등이 있었는데, 우라늄농축연구의 중심인물 중에 후시미(伏見)씨가 있었다고 기억한다".... 과협의 중진, 이시구 씨가 일본의 원폭개발의 흐름을 잇는 원자력과학자이며, 과거의 스승과 북조선을 연결시켰다면, 등줄기가 서늘해짐을 느끼는 건 필자뿐이 아닐 것이다. 상임이사에는 이외에도 앞서 소개했던 "총련과학자대표단장"인 신재균 씨도 있다. 10명인 "부회장"은 거의가 이공계 과학기술자이다. 처음에 언급했던 "미사일데이터 유출처" 기업의 전 사장을 비롯하여, 프랑스에 유학경험도 있는 동경공과대학 이학박사, 공화국 박사학위를 가진 조선대학교 이공학부장, 동해대학에서 반도체공학을 가르치는 공학박사, 자동계측기계메이커 사장 등.... 그러나 역시 10명인 "고문"의 면면은 다양하다. 주로 교육계를 걷고 조총련 직책을 역임했던 고령의 인물, "노동2중훈장"에 빛나는 북조선 대의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앞서 소개했던 내연기관의 세계적 권위, 상공련(재일조선인상공연합회) 임원, 조선대학교 전 이공학부 교수, 일급건축사로서 활약하는 동경대학 공학박사, 앞서 "약사법 위반혐의"로 체포되었던 동경대학 농학박사.... 대충 분류하면 6명이 공학, 1명이 농학, 나머지는 자연과학과 관계없는 조총련 인사이다. 그밖에 연구부나 기술부 등의 부장(部長), 각 "전문위원회" 위원장에도 역시 다수가 이학부, 공학부 출신자다. 출신대학별로는 거의 절반이 조선대학교를 졸업하고 있다. 다음으로 많은 것이 동경대학 공학부, 이어서 쿄또(京都)대학 공학부 및 동경공과(東京工科)대학이 뒤를 잇고 있다. 조선대학 졸업후에 동경대학 내지 쿄또대학 대학원에 진학한 경우도 많다. 물론, 임원의 출신과 전공만으로 과협 전체의 특성을 추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재일(在日동포)을 위한 최고학부"인 조선대학교를 별개로 치면, 과협에는 동경대학 공학부.... 특히 동대 생산기술연구소(東大生産硏)과 인연이 있는 과학자가 많은 점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과협의 2大 거점은 東大生産硏과 리화학연구소(理化學硏究所)"라는 건 북조선 연구자들 사이에서 종종 화제가 되는 일이다. 확실히 과협 멤버 전체로 시야를 넓히면, "동대생산연의 과협 인맥"이라고 부를 수 있는 흐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은 필자는 수년전부터 과협 멤버의 이름과 전문(전공), 출신 등을 가능한한 수집하고 있는데, 70년대- 90년대로 한정해도 동대생산연에 소속했던 과협회원은 확인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20명을 넘는다. 70년대 전반에는 東大生産硏을 거점으로 한 대남공작까지 행해지고 있었다. "학원산업스파이단사건"이라고 불러야 할 이 사건의 전모에 대해서는 생략하지만, "학원스파이단사건"이 종식되고 일단락 되고나서 일본인 납치가 시작되었다는 흐름은 기억해둘 의미가 있을 것이다.
과협의 표면적 역할
과협의 역할의 하나는 조국=북조선의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보다 적나라하게 표현한다면, 예를들면 과학기술자료를 수집해서 보내는 일이다. 이것은 과협 스스로가 공언해온 일이기도 하다. 2001년에 사라진 과협의 구 웹사이트에는 이렇게 기술되어 있었다. <일본을 비롯한 세계의 선진제국에서는 인터넷의 보급으로 과학기술문헌의 검색이 매우 편리하게 되었다. 과거에는 문헌을 입수하기 위해 국회도서관이나 특허청, 혹은 대학도서관을 찾아가서 문헌을 검색, 복사했었다. 그 기억이 아직 새롭다. 몇 건의 문헌을 입수하기 위해 교통비를 쓰고, 비싼 복사료를 지불하며 그 일에 하루를 소비했던 것이다. 자신의 연구에 필요한 문헌이라면 검색하는 데 익숙되어있지만, 공화국(共和國, *북한)으로부터 의뢰된 문헌 등을 찾아야 하는 경우가 되면 정말 고생했던 회원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근년엔, 자신의 컴퓨터로부터 풍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인쇄하지 않고도 보존해두는 것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지금까지 문헌 수집에 고생했던 사람들에게는 그 편리함에 놀랄뿐이다>. "북조선 본국으로부터 의뢰된 문헌 찾기"의 어려움은 상상하고도 남는다. 여기서는 문헌 입수만으로 "하루을 소비했다"라고 되어있지만, 실제 고생은 이것만이 아니다. 문헌의 종류에 따라서는 번역작업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반드시 민족학교(民族學校, *조총련학교) 졸업생들만이 아닌 과협 회원이 사전을 찾으면서 번역했을 것이다, 필자는 엉성한 조선어 번역문헌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문헌은 조총련산하 기업인 "구월서방"(九月書房)등을 통해 일본어 그대로 보내진다. 北의 과학자나 이공계학생의 다수는 일본어를 읽을 수 있는 것이다. 93년 조선인민군의 핵화학방위국에서 망명했던 이충국(李忠國)씨의 회상에 의하면, 80년대후반 "리과대학"(理科大學) 학생이었던 자신(李)과 다른 학생들은, 일본이나 미국에서 반입된 많은 과학저널이나 서적을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것을 읽기 위해 학생들은 스스로 외국어를 배우는데, 이충국 씨에 의하면, "일본어는 매우 인기 있는 언어였기 때문에, 일본어를 마스터하지 않으면 과학자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한다. 북조선의 첩보공작세계에서는 러시아어가, 자연과학세계에서는 일본어가 사실상의 제1외국어이다. 이것은 오사까경법대학(大阪經法大學)계열인 "오사까정보컴퓨터전문학교"가 과거에 평양외국어대학 일본어학과 학생을 연수생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나, 현재 북조선에서 사용되고 있는 PC의 다수에 일본어 OS가 사용되고 있는 것과도 무관하지않다. 과협에 의해 北으로 보내진 문헌의 량이 어느정도 될지는 정확히는 알 수없다. 하지만, 조선신보는 2001.6월 "붐비는 '애국'(愛國) 열람실"이라는 기사에서 다음과 같은 숫자를 쓰고 있다. <82년 인민대학습당 개관을 기해서 재일본조선인과학자협회가 중심이 되어 약 10만부의 서적을 기증했다. (중략) 현재까지 기증된 것은 수학, 물리학, 생물학을 비롯한 기초과학과 전력, 금속, 기계, 전자를 비롯한 운영공학(運營工學)의 각종 전문도서와 잡지류, 50여만부에 달한다. 이전엔 인민대학습당이 소장하는 여타 서적과 섞여서 분야별로 책 선반에 정리되어 있었는데, 88년에 "애국도서열람식"이 새로이 설치되어 해외동포가 기증한 서적이 한 곳으로 모아졌다.>(6.11자)
"수수께끼의 2.28 교시(敎示)"
"애국도서열람실"에 수장된 엄청난 문헌은, 과협의 애국활동의 말하자면 대외적인 얼굴에 해당한다. 조선노동당 군수공업부 직속기관인 "제2경제위원회"로부터의 전략물자조달 지시를 받은 과협이, 일본국내에서 "통제인(controller)적 역할"을 수행하면서, 산하의 관련기업에 물자구입 지시를 부여하는(세이신企業의 사례 등, * 94 봄 로케트연료 가공에 사용할 수 있는 Jet Mill 관련부품을 북한으로 반출)... 혹은 앞서 언급했던대로 예를 들면 대포동 발사와 관련, 과협 인사가 몇번이고 北에 건너가 기술지도를 행하는 것이 과협의 감춰진 얼굴이며, 北에게는 무엇보다도 "애국적 행위"이다. <우리들이 사회주의 조국의 부강발전을 위해, 특색있는 기여를 하기 위해서는, 경제대국을 자랑하고 과학기술 발전수준이 높은 일본에서 생활하며 사업하고 있다는 입지조건을 잘 이용하여, 재일조선과학자, 기술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을 뛰어나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1995년 "학술보고회"에서의 기조보고) 반대로 북조선의 과학기술 수준은, 재일과학자의 수준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낮다. 한국과학기술정책원의 이춘근(李春根)씨에 의하면 "북조선 국내의 대학 수준이 낮기 때문에, 해외유학생 활용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먼저 외국유학생을 보낸 파견국이 사회주의국가를 중심으로 추진되었고, 그 중에서도 60년대까지는 소련으로, 80년대 이후부터는 중국에 극단적으로 편중되어 있었다. 이때문에 북조선은 자본주의 선진국의 발달된 기술을 제대로 도입할 수 없었다". 해외유학생 활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하나의 실례로, 치무라(地村)씨와 요꼬다 메구미(橫田 메구미)를 납치한 "실행범" 혐의를 받고 있는 신광수(辛光洙)가 있다. 부카레스트공대 기계학부에 유학하고 귀국후는 과학원 기계공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약10년간 근무했던 공업기술자였던 신광수에게, 북조선은 일본잠입공작원이라는 전혀 엉뚱한 역할을 부여했던 것이다. 김일성 부자에 대한 우상화와 정치사상교육도 이공계 학생의 질(質) 저하의 크나 큰 요인이 되었다. 유학에서 돌아온 우수한 인재를 현장지원의 중심에 배치해도, 그 곳을 지배하는 "경제이론"은 자력갱생과 주체사상이다. 국내 원료에 의거하는 연구개발체재는 선진기술 도입의 장애가 되었다. 또한 선진기술 도입을 강력히 주장하면 사대주의자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었다. 그로인해 우수한 외국유학출신을 활용하고,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는 미래지향적인 연구나,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한 전략분야에 집중하는 연구 등은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80년대에 들어와도 북조선의 과학기술은 거의 진전이 보이지 않는다. 84년에는 중국의 개방정책을 의식해서 "합영법"(合營法)을 제정하고, 세계의 여러 자본주의국가와도 자본과 기술협력을 강화하는 개방정책을 표방했지만, 실적은 오르지 않았다. 속이 끓은 김일성은 85년9월 평양에서 떨어진 평성군(平城郡, 현재의 평양 은정지구)에 과학기술센터를 설립했다. 재일동포 과학자의 기술을 北의 과학기술 발전에 활용하다는 계획이었는데, 결국 이 계획은 북조선측 과학자 등의 반발을 초래하여 좌절되었다. 일본의 첨단기술을 어떻게하든 도입하려는 김일성은 다음 해에 방북했던 재일상공련감사단(在日商工連感謝團)을 접견하여 교시를 주었다. 이것은 "수수께끼의 2.28 교시(敎示)"... 공식으로는 "'상공련결성40주년기념 상공인감사단'에 대한 86년2.28교시"라고 불리우고 있다. 왜 수수께끼의 교시인가 하면, 이때 김일성은 단장인 전연식(全演植)씨 등에게 구두로, 개별적으로 교시를 주었기 때문이다. 문서에 의한 정확한 내용의 기록이 남겨져있지 않은 것이다. 조선신보 등으로 보도된 재일상공인들의 말, 조총련 관계자 등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이 교시의 큰 테마는 "일본의 첨단기술을 조국으로 도입하기 위한 합영사업의 추진", "민단(재일본한국민단)동포 등의 활용", 나아가서 가공할 일로... "우라늄과 미사일개발에 관한 매우 구체적인 지시"였다고 한다. "합영법" 계획이 꽃을 피웠던 것은 이 "2.28교시" 이후이다. 1986.10에는 조선국제합영총회사가 설립되어 합영사업이 본격화되었는데, 여기에 과협의 과학자, 기술자가 다수 관여하고 있다. 86년부터 10년간 설립된 합영회사는 41개사, 합작회사는 35개사이다. 총계약금액은 1억5천만 달러 가까이 되었다. 합영사업과 관련하여 언급해두고 싶은 재일 과학자가 있다. 최대규모의 합영회사이며 북조선에서 잠자고 있는 모나자이트 등 희토류(希土類, rare earth)를 제품화하는 "국제화학합영회사"의 理事, 조강호(趙康浩)씨이다. 실은 지금도 조강호씨가 동사의 이사인지는 분명치는 않다. 그 이유는, 거는 "91년 과협 학술보고회"이후 모습이 확인되지 않기 때문이다. 조강호씨에 관해서 언급하고 싶은 이유는 그의 경력에 있다. 1966년 조선대학교 이학부 화학과를 졸업한 후, 74년 동경공과대학 원자로공학연구소에서 공학박사를 취득했다. 우라늄 농축의 최고책임자였다고 한다. 1973년부터 14년간 조선대학교 공학부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1986년 북한에서도 물리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있다. 1974년 재일 과학자가 동경공대의 원자로에서 우라늄 농축을 하고 있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실 것이다. 같은 시기의 소련의 수준보다 재일과학자 쪽이 훨씬 위였던 것이다. 한 때는 중국의 심양(瀋陽)과 사이따마현(埼玉縣) 코시가야(越谷)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었던 조강호씨는 "너무나 빠른 시기에 경력을 노출시켜" 매우 눈에 띠는 존재였기 때문에 과협과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고 한다. 실은 이처럼, 과협에는 오히려 소속하지 않은 유력 재일과학자 외에, "과협과는 다른 계통의 기술이전 채널"도 존재하지만, 지면 관계로 생략한다. 과협은 지금도 기술유출의 중추인 것일까? "현재 상황을 말씀드리자면, 과협이 크게 화제가 되었지요. 북조선에 기술정보를 흘리는 '산업스파이' 비슷한 것이다...라고요. 모두가 눈을 날카롭게 뜨고 지켜보고 있으니, 지금은 그들도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겠지요. 만경봉호(万景峰號)에 이목이 집중되면 만경봉호로 무엇인가를 운반한다든지 등은 하지 않겠지요." 필자가 2003년에 출판했던 "사이버 북조선"에서 전 공안조사청 조사제2부장인 스가누마 미쯔히로(菅沼 光弘) 씨를 인터뷰했을 때, 스가누마 씨는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과협은 현재 "위축"되어 있다. 작년 10월 약사법(藥事法)위반에 따른 강제수사에 더하여, 금년1월 "방위청 미사일 데이터 유출" 보도 등 과협이라는 이름이 잇달아 지면을 장식한 탓도 크다. 금년 3월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일본, 한국, 중국등이 참가하는 "민족과학기술토론회"가 행해질 예정이지만, 일본측의 중심이 되어야할 과협 회원의 출석 희망자수는 이 원고를 집필하는 2월중순 현재 매우 적은 것이 현상이다. 이 "토론회"의 테마는 주로 나노기술(技術), 정보기술, 생물공학, 환경공학이다. 이른바 "미사일과 核" 관련 기술만을 "군사기술"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궂이 분류한다면 군사기술 외에 북조선이 현재, 힘을 쏟고 있는 것으로 IT산업은 유명할 것이다. 그러나, IT산업과 마찬가지로, "기계자동화기술"과 "나노테크놀로지"에도 북조선은 열심히 매달리고 있다. "기계자동화기술"이란 간단히 말하면 로보트기술을 의미한다. 실제로 과협의 "기계자동화전문위원회" 위원장에 의한, 로보트에 관한 논문을 네트(net)상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자동차공장 등에서보는 산업용 로보트, 혹은 두 발로 보행하는 인간형 로보트 등, "기계자동화"산업을 이미지하는 것은 과학에 어두운 필자에게도 비교적 용이하다. 그러나, 北이 힘을 쏟는 나노테크놀로지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나노(nano) 기술과 또 하나의 과협, "재일한국과학기술자협회"
나노테크놀로지와 관련하여 재일"코리안"의 과학기술자집단을 볼때 또 하나 잊어서는 안되는 존재가 있다. 재일한국과학기술자협회(韓國科協)이다. 재일한국계 신문 "통일일보"(統一日報)의 84.6.24일자 기사 "재일한국과학기술자협회, 첫 학술대회개최 예정"에는 다음과 같이 놀랄만한 기술이 있다. <동포사회에는 이미 조총련 산하의 과학자협회가 존재하고 있지만, 동포 과학기술자는 천명을 넘는다고 하며, 그 대부분이 분산상태에 있어, 많은 우수한 두뇌가 아직도 뭍혀있는 것이 실정이다. 그러나 同會에는 반년도 되지 않는 사이에 150여명의 회원이 모였으며, 조총련 산하의 과협 출신자도 적지 않고, 회원은 더욱 늘어날 것이 확실하다.> 되풀이 하지만 이것은 84년도의 기사다. 조국인 北과 南이 서로를 "남조선괴뢰","북괴"라고 매도하고 있었던 것은 물론, 한국중앙정보부(KCIA)가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로 명칭을 변경한지 3년후이며, 랑군폭탄테러로부터 겨우 8개월후, 대한항공기 폭파보다 3년반 전인 84년에 일본에서는 이미 여유로운 남북과학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라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이다. "재일조선인의 기적"이라고나 해야 할지? 그러나 이 "기적"을 해석하는 열쇠가 있다. 현재, 한국과협의 임원으로 자리잡고 있는 인물을 응시하면 문제의 진상이 어렴풋이 보이게 되는 것이다. 나노테크놀로지 전문가인 A씨. 과거 A씨가 토호꾸대학(東北大學)에서 이학박사학위(원자핵이학, 原子核理學 전공)을 취득했을 무렵, 그의 소속은 "조선과협"이었다. A씨는 다른 국립대학으로 옮겨 동 대학의 "외국인연구원", "외국인교사"가 되었다. 그 A씨가 "조교수" 지위를 얻은 것은 84년이다. 98년에는 "교수"로 취임하고 있다. 그리고.... A씨의 이름이 어느틈엔가 "한국과협"의 임원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90년대 후반, A씨가 교수로 재직하는 국립대학은 최초의 벤처기업을 설립하여 A씨의 연구결과를 제품화했던 것이다. 현명한 독자제씨는 아실 것이다. 국교가 없는 북조선적 과학자로는 국립대학 교수직에 취임하는 것도, 구(舊) 통산성 등으로부터의 조성금(助成金, * 보조금)을 얻을 수없는 것이다. 아마도 한국적(韓國籍)으로 바꾸었을 A씨의 약력을 응시함으로써 "한국과협"이 왜 조총련계 과학자를 흡수했던 것일까, 애당초 한국과협이 왜 태어났던 것일까...에 대한 상상이 좋던 싫던간에 생각나게 될 수밖에 없는 건 아닐까? "한국과협" 소속인 A씨는 작년 6월 북조선을 방문하고 있다. 방북목적은 나노테크놀로지 강연. "공화국의 나노테크놀로지 수준이 낮기 때문에 조국발전을 위한 강연을 해주기 바란다"는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북조선에서는 2004.3월과 9월에 김책공업종합대학에서 각각 "제1차, 제2차 전국 나노과학기술발표회"를 개최했다. 10월에는 초보적인 주사터널현미경(走査터널顯微鏡, STM) 제작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 STM의 공간분해능(空間分解能)은 1-50 나노미터 이며, 첨단 나노연구에 도움이 되는 수준과는 멀었다. 北은 제2차 과학기술발전5개년계획(2003-2007년)에서 나노기술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를 해왔다. 그러나 10월의 STM 제작으로 일단 성공을 거둔 후 北에서 나노산업에 관한 뉴스는 한동안 사라졌다. 그런데, 다음해 6월에 A씨가 방북하고 나서 2개월후인 8.26, 北은 "전국과학기술발표회"에서 나노분말재료(粉末材料)를 이용한 새로운 도금(鍍金)기술 전시를 보도했다. 더우기 9월과 10월에는 "나노멸균기(滅菌器)"가 전국 의료기관에 보급되고 있다고 보도하고, 그 동작원리를 상세하게 보도했다. 11월에는 윤활유 효과를 3배 향상시킨다는 "나노 윤활유 첨가제" 개발을 발표....라고 잇달아 나노제품 개발을 보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북조선이 힘을 기울이는 생명공학(BT) 및 정보기술(IT), 나노기술(NT)을 견인하는 힘으로서, "위축된 조선과협"에 대신하는 존재로서의 "한국과협"이 갑자기 클로우즈업 되어 온 것이다. 재단법인 화학기술전략추진기구 츠꾸바(筑波)관리사무소 소장이었던 아베 케이지(安部 桂司)씨는 논문 "다시 문제가 되는 재일조선인 '과협'과 북조선의 관계"에서 "지금 科協에게 요구되고 있는 것은 근대시민사회에 대한 충성이다"라고 간파하고 있다.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 科協의 정신을 체현(體現)한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이 로만틱하게 들리는 것은 과학이라는 투철한 논리와 객관의 세계와, 재능과 이지(理知)를 자애롭게 키워준 흙(토지)의 향기와 감촉이, 과학자라는 한개의 인간의 이야기로서, 유기적으로 결부되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 "조국"이라는 단어가 북조선의 "애국애족주의"라는 이념에 대한 충성과 결부되면, 로망(roman)은 비극으로 바뀐다. 그리고 세계에 통용되었을 우수한 재능이 "공작(工作)"에 혹사당하며, 학문적 영광을 보지 못한채 인생을 마쳐 간다.... 빈곤과 차별이라는 문맥으로 이야기되는 경향인 재일(재일동포)의 또 하나의 슬픈 노래(哀歌)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일본사회의 소수파(minority) 과학자집단 "과협"의 비극이란 한마디로 이 "애국애족주의에 대한 충성심"일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在日(재일 조선인)의 기분을 너희들이 아는가?"라고 비난받을 것을 각오하면서 감히 말하고 싶다. 科協에 속하는 과학자들의 祖國이란 북조선이 아니다. 그들이 현란한 재능을 꽃 피워야 할, 평안하고 충실한 연구의 나날을 보내온 것은, 다름아닌 일본이었던 것은 아닐까? (2006.03.05 完譯) | |